내가 생각하기에는, 우주가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뭐니뭐니해도 사랑이다. 소멸을 향한 ‘엔트로피’의 굴레를 한치도 벗어 날 수 없는 우리에게 “영원”을 희망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주가 인간에게 준 그 사랑은 어쩌면 우리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만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면?” 사랑 없이 남녀가 결혼하고, 사랑 없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일하고, 국가의 운영에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배제된다면 우리네 인간적 삶이 얼마나 삭막할까. 정말 무덤 같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기 원한다는 것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사랑보다 더 고귀한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덜 성숙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해도 나는 사랑이 좋다.

종교가 이미 세상을 다 살아버린 것처럼 말하고, 철학과 과학이 이 세상을 다 알아버린 것 같이 말해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새로움을 말한다는 것은 이미 너무 진부한 이야기가 되었을는지는 모른다. 문명의 출현 이래로 인간의 축적된 경험적 지식은 세상의 엄연한 물리적 토대를 보여줌으로써 결국 인간의 삶이란 우주의 먼지로 화하는 것뿐이라는 지독한 허무주의를 낳았다.

노년에 찾아온 사랑, 그 새로움의 역설, 이를테면 찾아온 사랑에 대한 “설렘”을 진솔하게 잔잔한 필치로 그려냈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자전적인 글들은 그래서 소멸에 대한 역설의 말은 아니라 나는 믿는다.

‘역사’도 우리가 가벼이 할 것은 아니지만 ‘아사코’에 대한 아름다운 연정을 노년의 가슴에 안고 사는 그것도 결코 덜한/덜해야만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 가운데에서 사람으로 사는 현재를 사는 이에게는 더욱 그렇다. 사람은, 아니 지금 내가 보는 이 모든 물질의 세계가 결국은 한줌의 우주 먼지로 돌아갈 운명이라지만, 그 먼지 가운데 어떤 것들은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고 사랑했던 인간의 자취라면 그것은 그냥 먼지일수는 없다.

정말이지 나의 간절한 바램은 누군가를 깊히 사랑하고 사는 것이다. 누구라도 좋다는 마치 세상을 잘 알고 있다는 무지의 교만과도 같은 그런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향취, 그 사람만의 생명을 알고, 느끼며 살고 싶은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사춘기 때 잠 못 이루던 그 그리움이 정말이지 그립다.

인간의 오만함을 넘어서, 인간의 거짓과 가식의 삶을 넘어서 내 삶을 누리고 산다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교토학파의 거장 ‘니시다니 게이치’가 말한 “리얼라이제이션”은 반드시 종교적인 언어만은 아니다. 그가 말했던 인간의식의 궁극성인 “체인(體認)”이란 말은 정말 사랑해야할 사람을 사랑하고 사는 삶은 아니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