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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해외 영농사업에 관한 기사(펌)
번호 :    글쓴이 : 쏭청요우    조회 : 4382    점수 : 50    등록일 : 2007년05월26일 21시21분44초
연해주 4억평 대순농장 영농성공 '신화 '
<르포> 대순진리회 4억평 러시아 영농안착 ' 청정식품기업 등장'
 
 

대순진리회, 러시 아 연해주 '아그로 상생' 농장을 가다

일본이 남미 등의 국가에서 농지를 매입, 해외 영농산업에 뛰어든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일본은 섬나라이지만 해외 영농지대까지 합하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이다. 해외 영농기업이 생산한 식품들이 오늘날 일본 국민들의 건강에 기여하고 있다. 근년에 들어 우리나라도 해외 영농기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2002년부터 연해주 영농산업에 뛰어든 대순진리회의 '아그로 상생'(연해주 현지 법인)이 러시아 연해주 현지영농에서 성공하는 영농기 업으로 안착, 천혜의 청정지역 연해주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원료로한 우수한 식품들을 출시하 기 시작했다. 기자는 '아그로 상생'의 연해주 영농 현장을 3차에 걸쳐 르포 했다. 지난 8월27일 부터 30일까지 현지취재를 다녀왔다. 해외 영농기업의 성장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들여다 봤다.

웰빙시대 건강식품 공급

▲지평선, 끝이 안 보이는 연해주의 벼 농장. ©문일석 기자








- 한국지방자치단체국제화재단 -

한국지방자치단체국제화재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방의 국제화 사업에 필요한 지식정보를 요 청하는 곳입니다. 해외도시정보, 제도, 시책, 연수, 해외기관(섭외), 자매결연정보 등 필요한 것을 상세하게 신청해 주십시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에서 국제교류사업을 추진하면서 당 면하는 문제를 문의하시면 친절하게 도와드리겠습니다.



* 이름 남중현 * 진행상태
* 소속기관 중앙부처공무원
* 제목 일본의 해외 농업개발 현황 파악 의뢰
* 문의(요청)내용 ○ 저는 농촌진흥청 작물과학원(수원소제) 작믈기능개발과에 근무하는 연구 직 공무원 입니다.

○ 우리나라는 농촌 그리고 농민과 농업을 연구하고 농업발전을 위하여 일하는 공무원들이 있 으면서도 사료를 포함한 식량자급률이 '02년 26.9%로서 하루 한끼도 고기 먹고 밥 먹는데 즉, 우리 밥상을 우리 것으로 채우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기만 합니다.

○ 식량자급률과 관련된 자료에서 보면 OECD 가입국 중 일본은 자급률이 27%, 한국은 26.9% 니 하고 많은 예를 일본과 비교하여 괜찮은 것처럼 안주하는 자료들을 봅니다.

또한 일본의 통계청 자료에서 보면 현재 경지면적은 474만ha(실제는 500만ha)인데 일본은 소맥, 대두, 옥수수, 대맥 등 연간 2,700만톤을 도입하는데 이들 량을 외국에서 생산하기 위하여는 해 외에 의존한 작부면적이 1,200만ha가 필요하다는 통계 수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흔히 일본의 해외 농업개발의 예를 드는 것을 보면 아르헨티나, 브라질, 페루, 중국 등에 국내 경지면적의 2배 가량이 있다는 미확인 정보는 있으나 어디에도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 다.

"특히 일본의 경우 해외 농업개발은 농림수산성의 보조사업으로 (社)해외농업개발 협회가 주관 하고 있다.", "민간단체 중심의 개발 수입이 이루어지면 위험회피를 위한 위탁재배의 비중이 높 다."는 등 표현을 보면 확실하나 근거가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는 연간 1,600만톤의 옥수수, 밀, 콩, 대두박 등을 도입하여 550만톤은 식량으로, 나머지 1,050만톤은 사료로 활용하고 있으며 매년 이들 물량을 도입하여야 식량문제를 문제없이 한해 를 보낼 수 있습니다.

○ 보내주실 자료는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자료로 활용코자 합니다.

"일본의 해외 농장 실태 파악"
*농장명, *소재국, *면적(ha), *구입일자, 토지가격, *소유권, 이주자 현황,
*영농조건, *재배작물 등에 대한 자료가 있다면
현재 그리고 미래 통일시를 대비한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것같아 부탁드리오니 꼭 꼭 도와주시 기 바랍니다.

* 표시가 있는 부분은 꼭 답이 있었으면 바람직하겠습니다.

바쁘신 공무중에 대단히 죄송합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 부서/담당자 동경사무소 이석종 과장
* 제목 [RE]일본의 해외 농업개발 현황 파악 의뢰
* 답변내용 안녕하십니까. 동경사무소의 이석종입니다.
요청하신 일본의 해외 농업개발 현황에 대해 일본의 사단법인 해외농업개발협회를 방문하여 조 사한 바, 일본이 직접 소유하고 있는 농지는 없고, 합작 또는 임차의 형태로써 대략 다음과 같 은 형태입니다.

1. 일본이 해외에서 국내 경작지의 2배 면적을 소유하고 있다는 설은 그 만큼의 농산물을 국제시장에서 구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 다시말하면, 일본에서 필요로 하고 있는 경작물은 일본의 경지면적의 2배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합작이거나 임차이지, 소유를 하고 있 는 것은 아님.

2. 중국과의 합작
- 합작이라고 하는 형태로 농장개발은 현재도 있음.
- 중국 51 : 일본 49
- 중국측은 토지를 제공, 일본측은 자금과 기술을 제공
- 단, 토지의 가격은 중국측의 주장에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정확
한 수치로써의 51이라고 하는 것은 불분명함.
- 일본에서는 중소기업이 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상장기업은 거의 참 여 하지 않음

3. 일본의 대기업이 동남아시아에서 농장을 소유한 적은 있음.
- 인도네시아 수하르트 정권기, 임차한 토지이므로 법률적으로는 일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토지였지만, 화전농업을 하는 현지인이 토지를 주기적으로 돌면서 경작을 하다 돌아와서 는 분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서, 스하르트 정권도 외국자본의 국내유치가 점점 어려워지게 되어, 현재는 일본이 소유하고 있는 농지는 없음.

4. 브라질 미개발지역의 개발계획을 수립하여 실행한 적은 있음.
- 브라질에서도 미개발지역에 일본의 기술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여 실행했지만, 브라 질도 공업화가 진전되고, 버블기에 일계주민이 일본으로 돌아오는 현상이 발생되자 실현되 지 못했음.


5. 관련 사이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 사단법인 해외농업개발협회 : http:/www.oada.or.jp/
- 일본은 1,200万ha의 경지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http//web.pref.hyogo.jp/gohan/siryou/sekai/izon/kaigai/131.htm


담당부서 : 한국지방자치단체국제화재단 동경사무소 (소장 : 고영길)
담당 : 이석종 과장
TEL : 03-3513-0233
E-mail : dol@klafir.or.kr
* 첨부파일

* 부서/담당자 동경사무소 이석종 과장
* 제목 [RE]일본의 해외 농업개발 현황 파악 의뢰
* 답변내용 안녕하십니까. 동경사무소의 이석종입니다.
요청하신 일본의 해외농장 실태 건은 다방면으로 자료를 수집하기위해 노력은 하고 있으나 일 반적인 자료가 아닌 전문자료에 해당이 되어 시간이 필요합니다.
관련 기관을 직접 방문하여 루트를 찾아 정리해 나가고자 하니 2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게시판에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담당부서 : 한국지방자치단체동경사무소 (소장 직무대리 : 김순선 차장)
담당 : 이석종 과장
TEL : 03-3513-0233
E-mail : dol@klafir.or.kr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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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발해(渤 海)의 해동성국(海東盛國)을 위하여
작성자 이병화 등록일 2004년 09월 02일 조회수 1240
제목 : 발해(渤海)의 해동성국(海東盛國)을 위하여
(연해주 농업환경과 고려인의 역할)


작성자 : 국제농업개발원장
경제학박사 이병화

목 차
1. 서문
2. 연해주의 농업환경
1) 대규모 논(沓) 국영농장을 건설한 동기
2) 농산물의 생산환경
3) 경제성 분석
3. 참여정부에 제출한 보고서
1)「극동러시아 자원개발 협력 위원회」설치를 건의하면서
2) 극동러시아 연해주 고려인 자치구역 건설에 관한 제언
4. 고려인의 역할


연해주 농업환경과 고려인의 역할

국제농업개발원장
경제학박사 이병화
(2004 . 6 . 5일)
1. 서문

"한인(韓人)들의 연해주 이주는 한민족의 해외농업 역사(歷史)이고 연해주 농업개발은 고려인
의 역사이며 영혼이다"
1858년, 지금으로부터 146년전 아이훈(愛暉)조약이후 1860년대를 거쳐오면서 시작된 한인들의
연해주 이주는 1902년 한인들의 이민자 수는 32,380명, 1914년 한인 교민수 6만3천여명의 피와 땀
으로 블라딕보스톡에 신한촌 건설, 1918년 일본군대 연해주 점령, 1922년 일본군대 철수, 1923년
재소(在蘇)한인 공식 10만여 명 실제는 25만 명이상 거주, 1932년 연해주 한인학교(기술사범학
교, 교원대학 포함) 380개소 운영과 신문 및 잡지 13종 발행, 1937년 7월 중·일전쟁, 1937년 9 월 21
일 스탈린의 원동변경지역 고려인 이주에 관한 일급비밀지령에 따른 중앙아시아(6천km)로 강제
이주, 우즈베키스탄 16,272가구 76,525명, 카자흐스탄 20,170가구 95,256명, 노보시비르스크 11월
15일 마지막 도착 열차(총 36,422가구에 171,781명)이주 직전 한인 지식인 2,500여 명 총살시킴,
이상은 대략적인 연해주 한인들의 이주 역사이다.
1860년대에 연해주로 이주한 초기의 한인들은 대부분 함경도지역 출신이었다.
1880년도부터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이들은 순전히 배가 고파 먹고 살기위하여 새
로운 삶을 찾아 나선 농업개척자이기도 하였다.
두만강을 건너 제일먼저 정착한 곳이 지금의 단강(丹江:레베딘카) 주변이었고, 가구마다 쟁기 질
을 위한 소와 말이 있었고, 강과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았다는 기록으로 볼 때, 대부분 반농반 어
가(半農半魚家)로 짐작이 되는데, 당시는 두만강의 일부 줄기가 단강으로 흘렀다는 기록이 있 고,
특히 단강(레베딘카)지역과 한마당(라즈돌리네)지역에는 지금도 1937년 강제이주 때 수확하지 못
하고 내버려둔 논에서 야생 벼가 자라고 있는데, 1991년도 MBC와 전(前)농림부장관이였던 김 성
훈박사께서 발견하여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이후 한인들은 강제이주 되기까지 더욱 북상하여 지금의 핫산 라이온(군:郡)을 벗어나 우수리 평
원과 흥개(興凱:항카)평원까지 진출하였고, 이때쯤은 이미 한인들의 인삼(장뇌)재배단지가 야누
친스키지역에 대규모로 조성되었는데, 강제이주 당시 약 600만평(여의도 면적의 7배)이 수확을 못
하고 그냥 두고 갔는데, 요즘「시호테알린」산맥에서 발견되는 산삼들이 대부분 60∼70년생인 것
으로 보아, 당시의 인삼들이 짐승들에 의해 번식되어 야생화되었을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한편 중
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던 한인들(이후부터는 고려인으로 표기)의 농업기술은 대단하여, 우즈
베키스탄에서는 김병화콜호즈(협동농장)와 황만금콜호즈는 소련 전역에서 단위당 수확량이 가 장
높아 최고의 명성을 얻었고, 전(全)인민최고노동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카자흐스탄지역도 강제이주 9년전인 1928년도에 먼저 이주하여 정착한 고려인들과 합류한 크 질
오르다주(州)의 경우 아방가르드소프호즈(국영농장)와 인터내쇼날콜호즈 역시 벼농사 최고의 수
확량(1Ha당 벼 5.8T/M)을 올려 노력영웅 대우를 받기도 하였다. 이렇듯 고려인들의 농업기술은
전체 소련에서 인정받았고 경종(耕種)농업은 바로 고려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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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서문은 상기의 내용들이고
● 본문은 1) 1958년 니키타 S. 흐루시초프의 농업개혁 단행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연해주 농 업환
경과
2) 최근 노무현 참여정부에 제출한 2건의 연해주 개발에 대한 건의서이고
● 결론은 본문에 따른 고려인들의 역할을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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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해주의 농업환경

스탈린 사망 3년 후부터 소련의 정치변동은 집단 지도체제인데, 이것은 극동러시아에서는 강 제
수용소 폐쇄를 따른 처형과 사면, 그리고 주민들의 거주권 제한 해제조치와 노병들의 일괄 제 대처
리 등으로 불과 3년 동안 인구는 약 200만 명이나 줄어들었고 이것의 여파는 연해주에도 심각 한
인구변동이 있었다.①
1958년 후르시쵸프수상 취임이후 더욱 강화된 농업개혁은 극동러시아지역에서는 가장 우선적 으
로 연해주지방 벼농사지대의 대규모 기계화 국영농장 건설이었다.
이에따라 강제이주 당했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벼농사 기술자들을 우선적으
로 일부 귀환조치하였고, 콜호즈(협동농장)는 소프호즈(국영농장)로 통합시키고 농장종업원과 관
련종사자들은 다시 거주제한 조치를 하였다.

1) 대규모 논(沓) 국영농장을 건설한 동기

구소련이 연해주에 고려인들을 동원하여 논을 만든 동기는 다음의 글에서 내용을 찾을수 있
다........전략, ②왜냐하면 직접적인 비교는 되지 않지만 같은 백인종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앵글로
색슨족)과 러시아(슬라브족)는 2차대전때 승전국이었고 이후 아세아권역의 황색인종국가 재건을
위하여 많은 식량원조를 하였지만, 그 방법은 매우 차이가 나서 반세기가 지난 지금 결과를 보 면,
시장경제의 위대성(?)을 미국은 한껏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이 1945년 8.15해방과 1951년 6.25전쟁으로 기진맥진해 있는 이 시기 PL480법을 적
용하여 식량원조를 하게 되었고, 비슷한 때 한국처럼 대만, 일본,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말 레
이시아 등도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분명한 것은 상기 7개 국가 국민 모두가 황색 동양인이고, 주식이 쌀이라는 사실이다. 그 시 기에
미국은 이미 캘리포니아주에 대규모 미작지대가 있었고, 아칸소주·미시시피주·루지애나주 등 도 쌀
농사가 성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쌀을 원조치 않고 바로 백인들의 주식인 밀
과 옥수수를 지원했다. 그 결과 지금은 한국을 포함한 7개국가 대부분 쌀은 남고 밀과 옥수수 가 모
자라서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이유는 오랜 세월 미국의 원조를 받는 동안 국민들의 위 장
이 밥에서 빵으로 구조변화를 해왔기 때문이다.
한편, 비슷한 시기 러시아(구소련)도 미국처럼 아시아 공산권 7개국가에 대하여 곡물을 지원 하
기로 결정하였는데, 대상국가는 북한·미얀마·월맹·캄보디아·라오스·방글라데시·네팔 등 이었고, 이
들 국민들도 주식은 쌀이었다. 당시 구소련 연방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알타이 평원에는 세계 적
으로 유명한 밀과 보리·옥수수 산지였고, 이들 곡물은 남아도는데도 미국과는 달리 자신들의 주식
인 밀과 옥수수 등은 주지 않고 먹지도 않고 재배하지도 않는 쌀을 공급했다. 이러는 동안 구 소련
은 붕괴되고 계속사업으로 전개되어온 연해주 논개발사업은 중단되면서 쌀재배면적은 매년 축 소
되어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데 최근 일부농지는 한국의 농민단체가 매입 또는 임대 영
농하여 북한에 쌀을 보내주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로부터 쌀을 공급받던 미얀마와 월남(당시 월맹)은 쌀수출국가로 세계적인 위 치
에 부상해 있고 나머지 국가들은 아직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다.....후략

2) 농산물 생산환경

후르시쵸프 수상은 연해주가 벼, 콩, 옥수수 재배의 농산물 생산환경이 최적지라는 사실을 인 식
한것은 1937년 강제이주전에 우수리평원과 항카평원을 개발한것이 고려인들이였고, 이때 단위 당
수확량이 전(全)소련 최고의 곡창지대인 알타이평원과 비슷했다는것과, 연해주 2곳의 평원(우수
리, 항카)이 중국의 흑룡강성 삼강평원 산하 4개분국③인 보천령( 泉嶺), 홍흥령(紅興嶺), 건삼
강(建三江), 목단강(牧丹江) 등의 국영농장과 서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영농 기후조건이 꼭같
고, 이곳에는 한국전쟁(6.25)때 참전한 인민해방군의 노병(老兵) 10만명이 투입되어 논과 밭을
197만Ha(한국의 총농지면적과 비슷함) 개척하여 1959년도부터 본격 생산이 들어갔는데, 벼, 콩,
옥수수의 수확량 역시 소련 최고 곡창지대보다 높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나서, 자신있게 계획 을
수립하고 1960년대 초부터 건설이 시작되어 1982년 11월 안드로포프 수상 취임후 이듬해까지 건
설예산은 지원되었는데, 이 해(1983)는 소련의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와 북한의 미얀마 전두환대 통
령 암살미수사건 등 국제적 사건 다발과 함께 소련 역시 정치적 격동기였고, 1984년 2월 안드 로포
프 사망이후 연해주를 포함한 극동러시아 농축산개발은 중단되고, 이후부터 침몰되기 시작하였
다.
한편 1995년부터 시작된 한국의 영농사업 진출은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해오면서, 러시아식 조
방(粗放)농업에 경험을 축적하여 지금은 어느정도 안정단계에 진입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1998 년
사단법인 북방농업연구소(이사장 박진환, 소장 박래경)는 연해주 호롤군의 시바콥스키 국영농장
에서 용역사업으로 벼, 콩, 옥수수, 재배검증결과 영농기자재(비료, 농약, 농기계 등)만 원활히 공
급된다면 농산물 생산환경은 양호하다는 평가를 한 바있고, 1994년부터 3년간 네덜란드의 ④로 얄
시드컴퍼니(왕실종자회사)는 연해주 핫산군내 바르바샤지역이 지구촌에서 가장 감자바이러스가
없고 다수확이 될 수있는 지역으로 지적했고, 1996년 캐나다의 ⑤켐코그룹(농기계판매회사)은 아
무르주(州)전체와 함께 연해주의 스파스크지역과 체르니코브카지역이 지구촌 최고의 콩 재배단 지
가 될 수 있는 곳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3) 경제성 분석

연해주에 영농사업을 가장먼저 추진한 고합그룹의 순야센과 크레모브 소프호즈의 경우는 한- 러
친선 도모를 위한 일방적 지원사례이기 때문에 경제적 분석은 불가능하고, 1997년 이후부터 필 자
가 농민조직들을 안내하여 벼농사를 지었던 곳들을 분석하면 두가지의 사례로 대별될 수 있 다.
첫째는 한국식으로 수확량에 목적을 두다보니 새마을 농장의 경우 1Ha당 6T/M까지 실적을 올
렸으나 생산단가가 러시아 정부 수매고시 가격보다 높아서 영농 포기한 사례가 있고,
둘째는 한국의 영농기술 제공과 영농자금 우선지급으로 러시아인들에게 조방농업(粗放農業) 위
탁재배는 단위당 수확량(1Ha당 2.5톤)은 낮았으나, 1톤당 생산단가는 러시아 수매단가(1997년
=$135, 1999년=$125, 2001년=$108, 2003년=$113)와 비슷하여 성공한 사례다.
작년(2003)의 경우, 경기도 여주 상생복지영농법인이 운영하는 야누친스키의 젬추쥐느농장은 중
국에서 개발한 벼품종 '합강 19호'를 심어 1Ha당 벼 4.8톤을 생산했으나, 생산단가는 톤당 $100 미
만이였고, 콩 역시 벼와 비슷한 생산비 밖에 들지 않았다.

한편 한국측에서 영농한 벼가 북한에 인도적 차원에서 28차례 지원되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
다.
● 1997년 12월말 호롤군과 국제농업개발원에서 공동으로 북한적십자협회에 2개 화차 83톤
● 1998년 겨울부터 이듬해 1월 사이 4개 화차 182톤
● 1999년 겨울부터 이듬해 2월 사이 4개 화차 183톤
● 2000년 겨울부터 이듬해 3월 사이 5개 화차 240톤
● 2001년 겨울부터 이듬해 5월 사이 50개 화차 2520톤
● 2002년 겨울부터 이듬해 2월 사이 64개 화차 3080톤(일부 수송하고 중단상태에 있음)

상기 물량의 수매자금은 대통령 특별기금(북한식량자원자금)으로 충당되었고, 수매단가는 톤 당
생산비에 $15∼20씩 더하여 지불하였고, 2002년 생산물량은 정권교체 관계로 참여정부로부터 지
원금 받지못하여 필자가 일부 대납하였고, 현재 수송중단 상태임.

국제농업개발원은 1992년부터 2000년까지 8년 동안 연해주 전지역(1640만 Ha)을 정밀 조사한
결과, 농업용지로 사용 가능한 면적은 아래와 같이 확인되었다.
논) ● 완벽한 용배수로 시설이 되어있고, 현재 벼농사 가능한 논 약 6만 4천 Ha
● 완벽한 용배수로 시설이 되어있으나, 한번도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된 논 약 4만 3천 Ha
● 용배수로 시설을 하다가 중단한 논 약 8만 5천 Ha
● 논으로 개척하면 수리안전답이 될 수있는 농지 약 16만 1천 Ha
상기 4개 사항에 해당되는 농지들은 전부 달레네첸스크(중국 흑룡강 최대 쌀 산지인 호림(虎 林)
지역 바로 옆) 이남지역으로 총면적 35만 3천 Ha이고

밭) ● 스프링클러 시설을 위한 관정이 마련된 밭 약 5만 8천 Ha
● 농업용 관정시설 없이 경작하고 있는 밭 약 25만 Ha
● 농업용 관정시설 없이 놀리고 있는 밭 약 57만 Ha
상기 3개 사항 면적을 합하면 밭은 총 87만 8천 Ha가 되고

초지) ● 연해주 총면적의 1/3은 초지와 방목지로 가능하나, 당장 벌채없이 사용할 수 있는 초 지
면적은 약 270만 Ha가 된다.(방목지 가능 440만 Ha는 제외)
논, 밭, 초지의 총면적은 383만 1천 Ha로써, 남북한을 합한 농지면적과 거의 비슷하다.

최근 농작물의 다수확량 조사는 중국 통계(흑룡강성 2002년 농업국 자료)을 보고 가늠할 수 있
다. 즉, 항카호수와 바로 7km인접한 흥개호 조선족자치현의 경우, 1Ha당 벼 8.2T/M을 수확한 기
록이 있고, 항카평원과 경계를 마주하는 목단강 국영농장 857대대(大隊) 역시 1Ha당 벼 8.1T/M
생산한 기록이 있고, 10km아래쪽의 우수리 평원과 경계를 마주하는 동령에서는 콩을 1Ha당
2.7T/M 생산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연해주 곡창지대는 농지로서는 한국보다 훨씬 우수하 다
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3. 참여정부에 제출한 보고서

1) 「극동러시아 자원개발 협력 위원회」설치를 건의하면서

(재)국제농업개발원 경제학박사 이병화
(동북아시대위원회 제안 60번. 2004년 3월 8일)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시장경제를 운용하는 중국이 지구촌의 거대 용광로로 변하면서, 이것 으
로 인한 에너지, 철,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여, 국제적인 경제이변이 속출하고 있 다.
특히 국경을 마주하는 한반도의 변화는 가히 폭발적이다. 북한은 논외로 하더라도 남한의 경 우
실업자가 속출하고, 경제성장은 예측과는 달리 혼미를 거듭하고 있고, 수출은 늘어나고 있지만,
내수경제의 침몰로 속빈강정이 되고 있다. 수입원자재를 이용하는 관련산업은 국제경쟁력을 상
실하고 있는 반면, 경제 성장보다는 분배 정의에 초점을 두고 있는 시민운동이 너무 범람하여 오
히려 국제경쟁력에 지장을 주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경제는 벼랑 끝에 와 있다. 이것을 바꾸 어
표현하면 위기가 곧 기회일 수도 있다.
이러한 국가적 난관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 러시아에 빌려준 차관과 연계하여 극동러시아 자 원
개발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자는 것이다. 러시아 연방정부는 극동개발사업(에너지(석유, 가
스, 석탄), 목재, 수산물, 광물, 농축산물 등 5종)에 이미 한국을 파트너로 지명한지 오래 되었으
나, 한국 정부는 이것을 총괄하는 담당자가 없어 실체 파악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극동러시아의 자원을 살펴보면, 남한의 면적보다 64배가 넓은 땅에 거주 인구는 서울 인구도 되
지 않는 약 800만 명에 불과 하지만, 석유매장량은 러시아연방 전체의 약 50%, 가스매장량이 약
70%, 석탄은 60%, 목재가 약 35%, 그리고 수산자원이 약 85%, 다이아몬드가 약 70%, 금이 약
50%, 납이 약 70%이며, 휴경되고 있는 농지는 논, 밭과 초지를 합쳐 무려 1,200만ha로써 남북한
총 농지면적 세배가 넘는다.
이렇게 무궁무진한 러시아의 자원과, 한국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으로 삼위일체 공생 사
업으로 전개하면, 한국의 경제성장 및 100만 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과 고질적인 북한의 식량난 을
단숨에 해결 가능하며, 반면 러시아에게는 호시탐탐 자기들의 옛 영토라고 주장하며 생필품 장 사
꾼들로 조직된 인해전술을 이용한 중국의 간접 침략에 남북한을 끌어들임으로써 쐐기를 박는 절
대절명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어, 그 시너지 효과로 러시아와 남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은 엄
청날 것으로 예측된다.

상기내용들을 상세(詳細)하면
● 에너지 개발에서 석유와 가스는 이미 이루츠크에서 중국을 관통하던 하바로브스크를 경유하
던 우리나라와 관계없이 결정되겠지만, 향후 개발될 사하(야쿠티야)자치공화국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와 가스는 한국의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절대적 위치에 있고,
● 한국의 제철산업과 화력 발전소에 필요한 석탄의 공급처가, 중국의 수요 폭발로 인한 수출 금지
는, 극동러시아산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과 상호 협력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에 있고
● 극동러시아 지역에서 벌채되는 목재는 일본과 중국이 92%를 수입해 가고, 한국은 8%에 불 과하
지만, 북한 벌목공과 협력하여 목재가공 산업으로 영역을 확대하면 목재산업의 주도권을 확보 할
수 있고
● 오츠크해역과 베링해역의 원양어업은 입어료 인상과 기타조건으로 한계에 도달했으나, 자국 어
선만 조업할 수있는 연근해 어업에 한국선단이 조업할 수있는 방법을 이미 개발한 상태에 있고
● 금, 다이아몬드, 납 등의 지하자원도 북한의 노동자들이 활동하고 있어, 한국의 자본과 협력 했
을 때 일본이나 중국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광구 확보할 수 있고
● 광활한 농지는 1997년도부터 한국의 자본과 북한의 노동력으로 영농을 하여, 참여정부가 출 범
하기 전까지 5년 동안 북한에 상당한 물량의 벼를 공급하여 왔고, 농지의 소유권도 한국인들에 게
넘겨주도록 법적 조치를 하였고, 그 결과 2004년 4월말 현재 약 9억 평(여의도의 약 947배) 농 지
가 한국인 소유로 되어 있다.

한국은 극동러시아 자원의 개발에 일본이나 중국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
극적이지 못한 것은, 그동안 러시아 연방정부의 정치적 불안 요소가 제거되지 못했고, 상대적으
로 한국정부도 이것을 총괄하는 부처가 없었고, 특히 광활한 농지의 경우 남북한의 식량자급을 단
숨에 해결할 수 있지만, 사시적(斜視的) 성향을 가진 일부 농정관료들과 농민단체들이 미국의 따
가운 눈길로 인한 소극적인 행동이 걸림돌이 되어 왔다.
비단 농지개발 뿐만 아니라 앞에서 지적한 에너지·광물·수자원 등 모두가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으나, 푸틴 집권이후 러시아의 내부 문제는 완전히 제거된 상태이고, 지금은 한국정부와 민간 기
업이 협력하여 과감히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1989년이래 지금까지 14년 동안 제안자는 극동러시아 자원개발에 매진하는 한편, 러시아 연 방정
부 극동지역 농업경제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해 왔고, 제안자의 학위 논문인「러시아 자원과 한국
의 자본 및 기술, 그리고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한 3국의 공생농업」은 러시아 국가정책으로 채 택
되어 응용되고 있다.
노무현대통령의 참여정부에 감히 건의코자 하는 것은 대통령의 주재하에 극동러시아 자원개 발
에 대한 전문가를 자처하는 정책 당국자와 민간기업인을 모두 불러 난상토론을 해보자는 것이 다.
그 결과 진출의 필요성이 결정되면,「극동러시아 자원개발협력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께서 직
접 관장하신다면, 한국은 새로운 경제 도약으로 지금의 난국을 단숨에 해결할 것으로 믿어 의 심
치 않는다. 아울러 제안자도 새로운 조직에 말석이라도 참여시켜 준다면 조국에 충성하고 국가 에
봉사할 기회로 알고 기꺼이 희생할 것이다.

2) 극동러시아 연해주 고려인 자치구역 건설에 관한 제언

작성자 : (재)국제농업개발원
이사장 : 박의근(보고책임자)
원 장 : 이병화(보조)
감 사 : 이원형(러시아변호사)(보조)
(동북아시대위원회 제안 2004년 5월 4일)
--------------------------------요 약 -----------------------------------------------
극동러시아에 고려인 자치구역을 건설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남북한과 국경을 마주하는 중
국의 동북삼성(東北三省)에는 우리동포 약 18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길림성(吉 林
省)내의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여러곳의 조선족자치마을(한국의 군, 면, 동네단위)에서 우리말과
문화 및 전통풍습을 유지 생활하는 중, 1992년 한-중 수교이후 한국과의 활발한 교류로 타 소 수민
족들이 부러워하는 우월한 위치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한편 극동러시아에 거주하던 우리 동포인 고려인들은 1937년 스탈린의 중앙아세아 강제이주 정
책에 따라 우즈백과 카자흐스탄 등으로 쫓겨갔다가, 1958년 부분 해금부터 구소련이 해체되어 완
전 해금된 이후 지금까지, 극동러시아로 귀향한 고려인(1세부터 3세 후손까지)들은 약 10만 명 에
이르고 있다.(기존의 사할린거주 동포를 포함)
그러나 이들은 우리말도 모르고 전통문화와 풍습등 한민족의 정체성도 망각해가고 있다. 이 러
한 터에 우랄산맥을 기점하여 동쪽에는 러시아인들을 상대로 중국의 생필품 장사꾼들이 무려 120
여만 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것을 러시아 푸틴 정권은 중국의 옛고토회복을 위한 인해전술 작전
으로 판단 경계하고 있지만, 당장은 필요악일 수밖에 없는 형편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소 및 한·러 수교이후 그동안 극동러시아 당국은 극동러시아 지역에서 한국과의 협력으 로 중
국을 견제하려는 다양한 정책들을 구상하여 왔으나, 한국측의 무지와 외면으로 방치되어 왔 다.
이제는 극동러시아 자원 개발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 도래하 였
다. 이에 우리는 극동러시아 연해주지방에 고려인 자치구역 건설을 지원하여, 이것을 발판으로
한민족의 웅대한 꿈인 발해의 해동성국(海東盛國)을 이루어 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을 살 고
있는 우리들의 운명이고 사명이며, 지금이 바로 이 사명을 실천에 옮길 절호의 기회임을 지적 하
는 바이다.
----------------------------------------------------------------------------- --------
1. 개황

극동러시아란 1) 사하자치공화국, 2) 유태인자치주(비로비쟌), 3) 추코트카자치주, 4) 코략(高 麗
岳)자치구(군단위), 5) 하바로브스크주지방, 6) 연해주지방, 7) 아무르주, 8) 마가단주, 9) 캄차카
주, 10) 사할린주 등의 10개 지역을 말하고, 이들 지역의 상위급 통치자는 푸틴대통령 산하의 7 개
연방지구 전권대리인 가운데 '극동지구 총통(총독이라고도 함)'인 「콘스탄틴-폴리콥스키」이 다.
이들 지역은 남한보다 면적이 64배 넓으나, 인구는 약 800만 명(04년 1월 극동 총통실의 발표 는
약 720만명으로 발표한바 있음)에 불과하지만, 석유 매장량은 러시아연방 전체의 약 50%, 가스 매
장량은 약 70%, 석탄은 약 60%, 목재는 약 35%, 수산자원은 약 85%, 다이아몬드는 약 70%, 금은
약50%, 납은 약 70%,를 차지한다. 그리고 휴경되고 있는 농지(논과 밭)와 초 지 및 방목지는 무려
1,200만 Ha에 이르러, 남북한 농지 총면적의 3배를 넘는다.
특히, 극동러시아는 중국 및 북한과 육로와 철도 등으로 육지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과거 의
소련땅이었던 미국 알라스카와 국경을 마주하는 추코트카자치주는 광물성 및 석유·가스등 지 하자
원의 보고이고, 오츠크해엽과 베링해엽 그리고 코만도르섬 일대는 세계최대의 수산자원 보고이
다. 하바로브스크와 불과 17km 떨어져 있으며 일본과 국경문제로 지금도 다툼의 대상이 되고 있
는 북사할린과 남사할린 역시 석유와 가스의 보고이고, 사할린의 부속도서인 큐릴열도는 일본 이
가장 탐내는 명태와 대구 등 한냉성 어류들의 최고어장이다.
또한 이들 지역은 탈냉전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남·북한을 겨냥한 첨
단 전투장비들이 항상 가동되고 있는 첨예한 전략지역이기도 하여, 러시아 군대 총전력의 1/3이
배치되어 있다.

2. 한민족(韓民族) 분포현황

현재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은 약 12만 명으로 그 구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37년 강제이주 전에 연해주와 하바로브스크에 살다가 강제이주 후 다시 귀향하여 살고 있 는
사람들이 약 5만5천명, 1945년 8월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동시에 남사할린과 큐릴열도 4개 섬 지
역을 구소련에 양도함에 따라, 이곳으로 징용가서 귀국하지 못한 사람들과 일가족 및 그 자손 들로
서 현재 사할린에 거주하는 사람과 극동지역으로 이주한 사람을 포함하여 약 4만 5천 명, 1945 년
해방이후 좌우익 세력이 신탁통치안에 관한 찬반으로 엇갈렸을 때 38도선 이북에서 공산세력의
찬탁에 반대하다가 극동 러시아지역에 노동자로 팔려와서 귀국치 못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약 5
천 명.
6.25전쟁 후 1953년 휴전때 남한에서 북한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극동러시아로 돈벌이에 차출 되
어 귀국치 못한 사람들과 그 후손 약 3천 명, 후르시초프수상 통치이후 지금까지 극동지역에 노동
자(벌목공, 수산일꾼, 탄광일꾼, 농업 및 건설노동자)로서 돈벌이 왔다가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 은
미귀환자(북한 당국은 중국으로 간 사람은 '탈북자'라고 하고, 러시아에서 귀국치 않는 사람은 '미
귀환자'라고 함) 약 1천 5백명.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의 사생아(라이따이한)들을 북한은 1980년도부터 1994년 김일성 이
죽기 전까지 약 800명을 평양에 불러와 간첩교육을 시켰는데 이들 중 약 150명이 극동지역에서 다
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고, 일본 조련계소속 약 100명, 북한보위부 관장아래 돈벌이하는 북한 일
꾼 약 9,700명, 한국의 상사원과 유학생 및 선교사 약 1,300명 등이다.
다시 정리해 보면 1937년 강제이주후 귀향하여 거주하는 사람이 5만 5천여 명, 일본에서 편 입된
사할린 사람들이 4만 5천여 명, 해방이후 6.25전쟁과 휴전을 거쳐 1955년까지 북한에서 노동자 로
팔려온 사람이 8천여 명, 한-소 수교이후 지금까지 벌목장 및 수산 현장을 탈출하여 중국으로 건
너간 사람들을 제외한 미귀환자 1천 5백여 명, 라이따이한과 조련계출신 250여 명, 북한 일꾼
9,700여 명, 한국인 1,300여 명 등 합계 12만 750여 명이 거주 및 활동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 푸틴정부는 우랄산맥 동쪽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생필품장사꾼 120만 명 중 1/10 이
조선족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3. 극동러시아의 자치구역변천사 및 법률적 근거

1) 자치구역 현황과 변천사

러시아내 자치구역(소수민족 행정구역)을 살펴보면, 21개 자치공화국과 2개 자치주(oblast)와 9
개 자치구(okrug=郡)가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결성과 1924년 연
방헌법발효이후 소수민족 우대정책에 따라 지금까지 건설 또는 성립되어 왔다.
극동러시아의 경우, 지금의 사하자치공화국은 자치주(州)로부터 출발했고, 유태인 자치주 역 시
okrug(郡)로 출발했고, 추코트카 자치주는 불과 3년 전에 자치구에서 승급했다. 보하이(渤海)후
예라는 코략(高麗岳)인들의 코략,자치구는 나날이 인구가 줄어들어, 승급은 커녕 오히려 자치구
자체가 소멸될 지경에 와 있다.(3만 명 미만이면 자치구역이 취소되는 법령있음)
정리하면 극동러시아 지역은 자치공화국 1개 지역, 자치주 2개 지역, 자치구 1개 지역 등 소 수민
족 행정구역 단위가 모두 있는 아주 특별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2) 한민족 자치구역 설치에 관한 러시아정부의 관련조치

● 러시아 연방정부(옐친대통령 시절)는 포고령 제64호 반포함
제64호 내용은 1937년 고려인들을 중앙아세아 강제 이주시킨 스탈린의 정책은 잘못된 것이 고,
이에 대한 연방중앙정부의 사과와 아울러, 연해주로 돌아오는 고려인들을 위하여 군대가 철수 한
지역을 영구 무상 임대토록 하는 것인데, 이는 러시아 연방최고회의 결정 제472-1호(93.4.1)의 후
속조치임

● 포고령 제64호의 추가지시로 연해주지방정부 소수민족 담당국장(자이카 지나이다 여사)을 대
변인으로 지명하여, 연해주지방정부는 고려인 중심마을 (1,500명 정도)을 30∼35개 정도 만들 수
있도록 법령 정비했음을 발표

● 1997년 8월 1일자로 러시아 연방정부는 연해주 고려인들을 위한 "영토없는 고려인 문화자치
주"를 선포함. 이로써 연해주 고려인들은 모든 문화행사와 고유의상, 언론, 언어, 학교설립, 고유
종교 등을 자유롭게 활동 및 건설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

※ 상기 포고령과 결정문을 검토해 보면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고려인 및 한민족들이 일정지 역
에 1,500명 단위의 30개 마을을 설치 운영하면, 자치구(郡=okrug)를 연방중앙정부 또는 극동총 통
에게 신청할수 있다고 해석되고, 다른 자치지역과 비교해 볼 때 전혀 법률적 제한이 없다는 전 문
변호사들의 의견임.
일부 변호사와 학자들은 3만 명 정도로 구성하고, 10년 이내에 1만 5천명을 추가하면 된다는 의견
도 있음.

● 그러나 고려인 자치구역 건설이 절대로 불가한 지역을 극동군 관구사령관은 이미 선포하여 두
었고, 연방 중앙정부도 동조하고 있음

불가 지역을 열거하면
① 국가 기간도로(국도 및 고속도로)가 있는 곳
② 외국의 침략을 방어하는 군사시설과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
③ 국가 기간철도(기차 및 전차)가 있는 곳
④ 이미 개발된 지하자원이 있는 곳으로, 국가가 관장하는 곳
⑤ 국가 기밀시설이 있는 곳 (예컨대 대륙탄두 미사일기지와 핵무기저장시설)

상기 내용을 살펴볼 때, 연해주 내의 고려인 자치주 건설 지역은 블라디보스톡·우수리스 크·나홋
카·스파스크·아르센네프 등 주요도시를 제외하면 매우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호롤스키군·달 래네골
스키군·발르치산스키군 등이 있고, 한-러 정상회담을 통한 협상으로 핫산스키군을 대상으로 할 수
도 있다고 판단된다.

4. 고려인 자치구역 건설과 한국정부의 협력

연해주지역에 고려인 자치구역을 건설하자는 의견은 모스크바에서 시작되었다. 한-소 국교수 립
에 이어 한-러 국교수립 협정이 체결되고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강제이주로 쫓겨갔던 우즈벡, 카
자흐, 타지크 등이 독립하면서 러시아어를 사용 못하게 하고 이어서 종교 압박을 가하자 이를 견
디지 못한 고려인들이 러시아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대체로 부유층은 모스크바로 그렇지 못 한
사람들은 원동(극동러시아)의 옛 부모님들의 고향으로 역이주하게 되었다.
이때 모스크바의 고려인협회 등은 러시아 연방중앙정부에 고려인들의 억울함과 명예회복을 탄
원하게 되었고, 이러한 요구가 수용될 기미가 보이자, 자연스럽게 향후 어디에 고려인 자치구역
을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의 모스크바거주 고려인들은 연해주 핫산지역을 거명했
다.
이러한 내용들이 노출되어, 핫산지역에서 북한으로 가는 길목에는 국경을 지키는 코샥민병대 들
이 "고려인들의 자치구역건설을 철저히 봉쇄하자"라는 철판으로 된 간판이 1995년까지 설치되 었
다. 이후부터는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농사짓기 좋은 곳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도출되고, 자 연
스럽게 호롤스키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한편 1990년 9월 30일 한국정부는 구소련과의 국교수립 때 제공한 14억 7천만불의 회수가 구 소
련의 해체로 어려워지자, 노태우대통령 시절 총리와 비서실장을 지낸 노○○박사 제3국에서 고 르
바쵸프와 면담케하여 기왕 제공한 차관과 고려인자치구역을 위한 연해주지역 일정부분토지와 교
환하자는 극비내용에 합의하였다. 추진프로젝트명은「광개토대왕 프로젝트」이다.
이후 국제농업개발원의 실무책임자가 용역을 맡아 조사했으며, 러시아가 제공키로 희망한 연 해
주 「달레네골스키」지역은 넓이는 경상북도 정토이고, 항구도 있으나 농지가 없어 당시의 고 려
인들 요구와 부합되지 않아 상사되지 못했는데, 이후 김영삼대통령 당선자는 정권인수 때 「광 개
토대왕 프로젝트」를 파기시킴.
이후 1995년 7월 전두환 전(前)대통령이「광개토대왕 프로젝트」를 차관과 관계없이 자기 돈 으
로 추진 할 테니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국제농업개발원에 하게 되었고, 실무책임자는 구소련의 농
업정책 입안자인 우스트쟈닌(구소련 고르비정권때 농업부차관)과 나제르추크(농업부장관)와 상
담 결과, 농업지역에 고려인 마을들을 몇군데 분산하여 만들고 이후 마을들을 연결하는 상업도 시
를 만들면, 고려인 자치구역 건설이 가능하다는 상담문건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전달함.
이것을 「흥개(興凱)호 프로젝트」라고 이름짓고 추진하기로 결정함. 이 사업의 일차 필요자 금
63억을 추진책임자(이병화)는 요구하였고, 63억 중 2억 원은 같은해 10월과 11월에 인수하였고,
61억 원은 쌍용빌딩에서 보관 중 김영삼정부에 현찰로 압수당함.
1996년 7월 프로젝트실무책임자인 이병화는 월간조선 7월호에「전두환대통령의 못다핀 발해 의
꿈」이란 내용을 기고하여 사계에 파문을 일으킴. 이때 옥중의 노태우 전대통령이 아들(노재 현)
의 측근을 통하여 "나도 연해주 개발 꿈은 버리지 않았다"라고 연락해 옴.
그해 8월 권영해 안기부장이 연해주 고려인 자치구역 문제로 단독 면담하자는 연락해오므로, 이
병화는 전 농림부장관 허신행박사를 대동하고 3인 극비회동. 회합 결과는 연해주 사업을 위한 별
도조직을 극비에 만들도록 하고, 사업 추진명을「발해복권」으로 명명함. 이후「발해복권」은
다시 「광개토대왕」으로 변경하였음.
10월 1일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의 최덕근영사(안기부요원)가 북한테러요원에게 피살 당
함. 이에 따라 연해주의「광개토대왕」사업은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잠정 중단하기로 함.
이후부터 한국정부는 손을 떼고, 고려인들 스스로 추진하였으나 고려인들 내부결속에 문제가 있
어, 현재까지 수수방관하는 상태에 있음.

5. 고려인들의 희망사항

극동러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남북한인 즉, 고려인 자치구역 건설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 대부
분은 향후 고려인자치구역을 건설한다면 어느 지역이 가장 적합한가라는 질문에, 95%이상이 연 해
주지역을 거명했다.
그렇다면 건설될 고려인자치구역의 업무형태는 어떤 것이 중심되어야 하는가의 질문에는, 극 동
지역 러시아인들을 상대하는 상업도시 건설에 55%, 고려인들은 원래가 농사꾼이었기 때문에 남 북
한의 식량공급을 위한 농업생산에 35%, 나머지 10%는 공업 또는 수산업 중심도시 건설을 희망 했
다.
건설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의 질문에는, 고려인·남북한인 75%가 자치구역에 거주할 고 려인
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하는 조건으로 투자할 한국측에서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려
인들이 주체가 되면 의견수렴도 어렵고, 밤낮으로 조직간에 싸움만 하다가 건설도 못하고 결국 은
망하고 말것이라고, 고려인 지식층들은 강력히 주장했다.
한편 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은 정치적 성향이 극동지역의 타지방보다 강하여 고려인 자 치
구역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발언들을 계속하여왔고 일찍부터 핫산지역을 거론하였으나 러시
아연방 중앙정부와 군대조직의 반대로 주춤하여, 농업도시 호롤지역도 좋다는 의견을 피력하여
왔다.
러시아 거주 모든 고려인들의 의견을 종합할 때, 고려인 자치구역 건설은 이미 고려인 문화 자치
주로 선포된 연해주 내가 좋다는 것은 통일되었고, 러시아 당국이 허락만 한다면 핫산지역이 최고
의 적지이나, 이것이 불가능할 시에는 호롤지역이 차선책이라는 의견이 도출되었다.
특히 호롤지역은 군대가 철수한 대형 비행장이 있어 민간용으로 전용이 가능하고 철도가 완 벽
히 구비되어 있으며, 옐친정부 시절에 이곳의 군대철수 막사와 농지를 고려인들에게 영구무료 사
용토록 조치한 바도 있다.

6. 결론

연해주 고려인 자치구역 건설에는 두가지의 접근방법이 도출되었다.

● 금년에 예정된 한-러 정상회담때 고려인자치구역을 화제로 삼아, 핫산지역을 고려인자치구 역
및 자유무역지역으로 지명하여 중국의 인해전술작전의 방어벽으로 활용토록 하여, 한-러-북한 과
의 공조로 3국의 경제건설에 이바지한다는 것으로, 현재의 러시아 소수민족 관련 법령을 송두 리
째 무시하는 것이고,

● 또 다른 방법은, 철저히 러시아 법령을 준수하면서 건설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합한 지역은 앞
에서 거명한 농업도시 지역인 호롤스키라이온이다. 이곳은 한국의 충청남도 넓이와 비슷하고, 대
부분 논과 밭으로 되어있고 이미 한국의 농업인들이 진출해 있다.

● 만약에 핫산과 호롤지역이 불가능할 때에는, 과거 노태우 정권 때 거론되었던 탄광과 임업 도
시 및 수산업기지가 있는 달레네골스키 지역도 무난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고려인 자치 구
역 건설에는 반드시 러시아 연방중앙정부가 미상환하고 있는 차관금과 연계할 것이라는 사실 을,
염두에 두고, 한국은 실리를 챙기면서 러시아 땅에 동북아시아 시대를 겨냥한 '제2의 한국' 을 건
설한다는 의지와 남북한 통일을 향한 '예행연습장' 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4. 고려인의 역할

멀지 않은 장래 연해주에 건설될「고려인 자치구역」에 극동러시아에서 거주하는 고려인들은 한
마디로 「예비국민」들이다.
지난 2001년 7월 26일∼8월 18일까지 러시아를 방문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동행한 극동 러
시아 총독인 콘스탄틴 폴리콥스키가 기차 속에서 함께 나눈 대화 중에, 북한은 노동자 25만 명 을
연해주로 보내어 러시아자원과 한국의 자본을 결합하여 남북한의 식량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 다
는 발언을 하였다고 전하며, 또 이런 이야기도 하였다고 한다.
연해주를 보는 시각이 일본은 1918년부터 4년동안 그들의 「괴뢰정부」를 수립하였으나, 2차대 전
에 패망하여 오히려 남사할린과 쿠릴열도 4개 섬조차 러시아에 몰수당하고 호시탐탐 재탈환을 노
리고 있는 가운데, 연해주에 진출하여 기르는 어업으로 수자원확보 전진기지에 매달리고 있으 며,
중국은 아이훈조약 이전의 자기들 땅으로 되돌려 놓기 위하여 인해전술을 구사하고 있지만, 중 국
도 일본과 같이 고려인들처럼 러시아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가 없어 행동의 범위가 제한적일 수 밖
에 없다는 것이다. 김 국방위원장의 지적은 매우 예리하다.
그렇다. 남북한에 있어서 러시아 국적을 가진 고려인들은 보석과 같은 존재이다.
연해주는 극동러시아의 핵과 같은 존재로서, 정치·사회·경제·문화·무역 등의 중심지이 다.
남북한은 고려인들과 함께 연해주에 한민족의 식량기지와 인구분산기지로 개발에 총력을 기울 여
야 한다. 이의 건설에는 매년 400∼500억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필자와 해외농업 전문가들은 건설비용을 충당키 위하여 이미 대안을 마련하여 두었다.
현재 한국은 식용 콩(NON-GMO)을 매년 약 38∼42만을 수입하는데, 이것의 절반 정도를 연해 주
에서 생산하여 한국에 무관세 반입(현행 487% 고액관세를 적용하고 있으나 WTO협상에 따라 10
년 후에는 200%로 인하될 것으로 예측한다)토록 하는 대신, 연해주 개발사업 비용으로 수입원 가
의 100%를 징수하면 매년 500억원 정도의 자금은 충분히 확보될 것이기 때문에, 한국정부에 전 혀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는다.
연해주를 위시한 극동러시아의 고려인들과 북한노동자 그리고 한국농업기술자들이 서로의 손
을 잡고 남북한의 식량기지 확보에 총력을 경주하는 것이, 바로 고려인자치구역을 건설하는 지 름
길임을 우리 모두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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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임이 제안하신 '해외 영농사업' 에 대하여 관련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예전에(80년대 초) 일본이 남미국가 어딘가에 자국의 농토만큼의 면적의 토지를 영구임대
하였다는 내용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관련기사가 없더군요.
하지만 이리저리 계속 찾다보니 결국은 찾았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설로 치부되는 듯한 내용인데....
다시 또 전문적인 자료다.. 좀 더 찾아보겠다는 등 좀 구린데가 있는 듯 합니다.
맨 아래 내용은 '동북아시대위원회'의 홈페이지에 제안한 내용이네요.
좀 더 자료를 모아서 다듬으면 훌륭한 정책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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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김진형 (rlaxkrrn) IP 61.47.221.♡♡♡  작성일 2007년05월27일 13시50분26초
아쉽게도 사진들이 시효가 다 되었던지 벌건 배꼽밖에 안 보여줍니다. 뭐 이정도만 하더래도 제 정책 제안의 타당성 입증엔 충분합니다만, 처음보시는 분들에겐 눈에 확 펼쳐 보여지는것이 더욱 현실감 있게 느껴질수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다시또 아쉬움이 몰려옵니다.

잠시후 이글에 달렸던 꼬릿말들 모아 옮겨놓겠습니다. 그러므로 장차의 보나세 역할이 대한민국에 어떻게 영향미칠것 이라는것을 감 잡으실수있지요.
  [2/2] 김진형 (rlaxkrrn) IP 61.47.221.♡♡♡  작성일 2007년05월27일 14시02분00초

[쏭청요우]
김진형님이 제안하신 '해외 영농사업' 에 대하여 관련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예전에(80년대 초) 일본이 남미국가 어딘가에 자국의 농토만큼의 면적의 토지를 영구임대 하였다는 내용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관련기사가 없더군요.

하지만 이리저리 계속 찾다보니 결국은 찾았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설로 치부되는 듯한 내용인데.... 다시 또 전문적인 자료다.. 좀 더 찾아보겠다는 등 좀 구린데가 있는 듯 합니다. 맨 아래 내용은 '동북아시대위원회'의 홈페이지에 제안한 내용이네요. 좀 더 자료를 모아서 다듬으면 훌륭한 정책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퍼오는 기술이 미천한 관계로 불편을 드려 죄송..... 06.10.28 13:56


[부쒸깽이]
맞아요. 해외동포들 무지 중요한 인적자원이라고 생각합니다.귀중한 자료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06.10.28 13:16

[김진형]
오~~~ 이 얼마나 훌륭한 자료인가?? 역시 방위출신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먼... 참정연에는 정보통이라는 신비의 인물이 있었고 우리 보나세에서는 그에 걸맞는 똥방우가 있구먼... (재)국제농업개발원 경제학박사 이병화 <-------이사람 이어야 합니다. 이사람을 홀대치말고 청와대에서는 그분을 불러들여 진지한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다행인것은 저는 그 예전부터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구상만 가득했었던것을 민간단체에서 연해주 등지에 임차하여 농사를 짓고 있었으며 북한으로 쌀 지원을 꾸준히 해왔었던 사실등이, 충분히 제 구상이 승산 있는것으로 입증되는것이며 또, 이병화씨의 주장대로라면 어쩌면우리 한국이 세계곡물메이저로서 부상할수도 있다는 꿈과 같은 일이 현실로 나타날수도 있다는거 아닙니까??

농업뿐 아니라 보너스도 상당히 많지만 어떻든 대한민국농업의 새활로를 찾는것이 정부측에서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것이고요. 한편 그로인해 달라질 국내 사정은, 하면 할수록 손해만보며 생산성에서는 마이너스 요인이었던 애물단지로 취급할정도로 변신된 지금의 농지들은 각지방 정부에서 잘들 연구해 해외기업 유치를 비롯, 국내 투자자들 혹은 땅값이 비싸 공장하나짓기에도 어려움을 격느라 마지못해 중국등지로 나가야했던 국내 중소기업들도 다 품고 나아갈 터전이 마련되어 전국이 생산성있는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전개될수있다는것 아닙니까?? 아무튼 너무 수고 많으셨소. 그리고 고맙고요. 06.10.28 13:55


[쏭청요우]
'국제농업개발원 경제학박사 이병화' -> 이 분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볼 필요성이 있지요. 정부에서 적극적인 정책반영이 미진한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007년 대선이 더욱 더 중요하겠지요. 민주개혁세력이 반드시 참여정부를 이양 받아야 하니까요 ....... 이 자료를 찾게해준 '구글신' 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구글렐루야~~~ 구멘.... 06.10.28 15:09

[김진형]
지금까지 이글을 세번째 보는겁니다 너무도 귀한자료고 보면 볼수록 무척 흥미있고 유익한 자료입니다. 우리 기획팀은 두고두고 이자료를 익혀서 앞으로 정책에 반영하는데 누구보다도 훤히 꿰차고 있어야 할것같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돌파구가 열릴가능성은 너무도 농후합니다. 우리가 인식한 주요 사안들을 어떻게 국민들과 정책입안 할 자격을 취득한 분과 또 취득 예정인 그러한 분들에게도 알기쉽게 설명해 나가고자 한다면 보다 짜임새있는 보고서 라든가 도표등은 물론 이지만 거기에 담겨질 용어들도 머릿속에 확 와닿으면서도 쉬운 어휘선택들이 필수일거 같습니다.

그리고 연해주가 러시아 어디쯤에 붙어 있는건지는 몰라도 이병화님을 직접 찾아뵙고 여러 얘기도 나누고 함께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등도 찍어올리는등 사회적 이슈의 인물로 부각시켜 현실화 시키는 다양한 방법들을 우리 보나세에서 추진해 보는겁니다. 아아~ 보나세~아아 ~ 쏭청요우~ 06.10.2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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